미니멀라이프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었다. 내 의지로 본 건 아니고 우연히. 기억은 다 휘발되고 없지만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았다. 신혼부부였던가, 어쨌든 자녀 없는 2인 가정이었는데 모든 물건을 딱 필요한 것만 남겨두는 미니멀리스트였다. 부모님이 오셨는데 여분 그릇도, 식기조차 없어서 1회 용품을 사 와서 식사를 했다던가 나가서 사 먹었다던가... 그랬던 것으로 기억난다. 부부는 조금 곤란했지만 어쨌거나 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들 선택이고 그들 사정이니 내가 판단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당시 물건을 차차 줄이고 있던 나는 저렇게까지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미니멀라이프도 결국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인데.. 내 성정에 저런 일이 벌어진다면 전혀 편안하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미니멀라이프도 개인화될 필요가 있다. 내 스타일 미니멀라이프를 확립하자. 필요 없는 물건을 줄이고, 구매를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 정리해 나갔다. 우선 내 짐부터 시작하면서 가족들에게도 동참을 권했다.
마침 20년을 산 집에서 이사를 하는 상황. 짐이 너무 많았다. 이래선 포장이사시 트럭 한 대를 옵션으로 추가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높았다. 가족들도 이참에 좀 버리자! 는 뜻을 한데 모았다. 처음 짐 줄이기는 버리기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기간이었다. 시작과 동시에 아깝다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고 이걸 몇 년을 안 썼더라 곱씹으니 버릴수 있었다. 지금 정리해보니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약 3개월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 실행 목록
-오래된 책 정리 (온라인 중고서점 매입 서비스 이용. 알라딘, yes24. 너무 오래된 것은 폐기처분)
-안 쓰는 책상, 침대 당근마켓을 통해 무료 나눔
-대형 전축, 기타 오래된 전자기기 정부 24 폐가전제품 무상 방문 수거 서비스로 처분.
-옷 정리. 사놓고 안 입은 옷과 가방은 당근마켓, 중고나라 등으로 처분.
-이불, 유행 지난 헌 옷, 신발과 커튼. 헌 옷 매입 업자에게 처분.
-선물 받았던 인형들. 세탁 및 건조하여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
지금 되돌아보니 1차 비우기는 사연이 깃들지 않은 물건들이 버려졌다. '버리기'라는 행위에 거부감이 느껴졌던 이유도 어느정도 깨달았다. 필요 없는 물건들은 결국 나의 비합리적인 소비의 민낯을 보여줬다. 예쁘다는 이유로 샀던 조그만 장식품들. 잠깐의 기쁨을 선사하고 삼 년간 먼지가 쌓였으며 예쁘던 모습은 잃어버린 채 쓰레기가 되었다. 결국 다 사용하지도 못한 원플러스 원으로 구매한 다양한 색깔의 쉐도우와 매니큐어. 유통기한 내 다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 외, 시간이 켜켜히 쌓인 자질구레한 것들도 많이 버렸다. 대표적으로 초중고 때 쓰다 남은 학용품, 미술용품, 악기. 오래된 구형 전자기기. 너무 멀쩡해서 놀랐고, 버리려니 양심이 찔렸다. 결국 모두 버리지는 못했고, 70프로 정도는 처분한 듯하다. 작동하지만 너무 오래된 것인지라 누군가에게 주기에도 민망한 상황이라 폐기밖에 방법이 없었다. 제도용 자, 리코더, 단소, 에이포 파일... 대부분 플라스틱 제품들이었고 여러 소재가 복합 부착된지라 분리되지 않은 것들은 어쩔 수 없이 종량제에 버렸다. 지구에게 미안했다. 나는 죽어 분해되어도 얘들은 지구에 남아 있겠지. 앞으로 플라스틱 제품은 숙고해서 구입하기로 다짐했다.
1차 비우기 후 느낀 점은, 버리기 기술을 연마중인 초보자인지라 가끔 필요한 물건을 버렸음을 알게 된다. 안 쓴다고 중고나라에 팔았던 무선 랜카드를 다시 구매했다. 또, 생각보다 망설이며 버렸던 물건들이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점도 알았다. 선물받아 쌓아두던 인형들이 그렇다. 몇십개를 아름다운 가게에 기부하고, 정말 가지고 싶다고 생각한 인형 딱 하나를 일주일간 숙고한 뒤 샀다. 배에 올려놓고 폰 보기 딱 좋은 부드러운 재질이었다. 고민이 길었던 만큼 물건에 애착이 생긴다. 오래오래 쓰고 싶다는 다짐도 했다. 놀러 왔던 세살 조카가 껴안고 낮잠 자다가 가져가서 조금 슬펐다. 같은 인형을 다시 구입할까 고민했지만 바로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다시 일주일을 잊고 살다보니 그냥 침대에서 쓰던 쿠션으로 대체하니 괜찮아서 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이사를 왔고 버린 만큼 공간이 생겼다. 비워진 공간 좋긴 한데 세트병, 모아서 진열하기가 취미였던 나는 다짐을 잊고 슬슬 물건을 들이고 있다. 버린만큼 사면 무슨 소용인가?
알면서도 내 손가락은 인터넷 쇼핑에서 떠날 줄을 모르고 마트에선 눈이 돌아간다. 이쯤이면 수집병은 나의 불치병 혹은 인류의 뇌에 새겨진 비밀의 주문은 아닌가 싶은 의심마저 든다. 필요한 물건은 모두 집 앞 마트에 있고 하루밤이면 새벽배송과 로켓배송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데도 왜 자꾸 빈 수납장을 채우고 싶고 빈 책장에는 새 책을 꽂고 싶을까? 수렵과 채집, 저장으로 혹서기를 대비하던 원시시대의 생존 유전자는 어째서 진화하지 못하고 짐의 소굴로 들여놓는가... 우가우가.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 미니멀 라이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유지 가능한, 내 스타일의 미니멀 라이프를 확립하는 과정이다.
미니멀 라이프의 개인화 도전.
가장 저급 난이도인 1일 1개 버리기, 버리고 기록하기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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